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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원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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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원건축직업전문학원 작성일19-03-05 15:07 조회2,5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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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원 성당 - 첫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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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원 성당] 

두 번째 방문 하는 길. 들이 여물어 가고 있었다. 눈이 부시게 따가운 햇살아래 눌눌하게 익어가는 들이 마음 가득 풍성했다. 선 붉음을 간직한 채 하늘거리는 길가의 코스모스도, 야무진 대추도, 다람쥐에게 포획된 밤톨도, 심지어 개구리를 물고 가는 족제비의 모습까지 그냥 그 자체로 넉넉해 보이는 방문길이었다. 양평에서 횡성으로 넘어 가는 그리 높지 않은 굽이길. 산속 깊숙이 들어가는 구불구한 고개 길 이었다. 장길산이나 임꺽정같은 대도들이 산채를 이루고도 남았을 법한 형국이다. 풍수원이 그랬다. 조선 후기 종교 박해를 피해 찾아 들어온 사람들이 터를 이루고 살았다고 하는데, 그럴만한 곳으로 안성맞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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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박해(1801년) 이후 경기도 용인에 살았다는 신태보(베드로)가, 하늘아래에 사람아래 사람 없고 사람위에 사람 없음의 신념을 지키고 펼치기 위해 40여명을 신도들과 안주 할 곳을 찾기 위해, 이 길을 걸었다고 한다. 구불구불 나른하고 지루한 이 길을 지나며 얼마나 힘들고 지치고 배고파했을까 생각하니 맘이 짠해져 왔다. 사실 난 종교가 없다. 하지만 농촌의 피폐함에서 도망 나오듯 만 원짜리 지폐 몇 장 들고 서울로 올라온 나로서는, 가난도, 멸시도, 착취도 없는 새 새상을 찾아 나섰을 그때 그 사람들의 두려움과 가슴 먹먹함이 그대로 내게 전해져왔다. 이 사람들의 맘에 가 닿는데 꼭 무슨 종교가 있어야만 될까 싶다. 그런데 웬 성당 방문일까. 종교도 없으면서. 그것도 똑 같은 곳을 두 번씩이나. 난 여기서 우리나라의 벽돌 건물들을 둘러보면서, 우리 벽돌공들의 발자취를 찾아 나서 보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 선배들의 삶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벽돌쌓기의 공법과 기법, 그리고 그 시절의 벽돌공들의 숙련도를 짐작해 보고자 한다. 또한 찾아나선 건물의 평면도와 단면도를 그려보고, 기본벽돌과 이형벽돌의 개수를 알아 봄으로서 전체적인 규모을 살펴 보고자 함이다. 그런데 남아 있는 근대 건물 중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건물들이 종교 건물들이라는 것이다. 한국전쟁이 이후 급격한 산업화에 맞물려, 개인 자산이나 국가 건물은 자본주의에 발맞추어 허물어 지고, 부수어져 남아 있는 건물들이 대체적으로 성당들이 었던 것이다. 벽돌은 삼국시대부터 쓰여 졌음이 확인되었고, 조선시대를 거처 근대 개화기 이후 본격적으로 사용되었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사용 되어 질 것이라 보인다. 이는 재료의 공급이 원활하고, 색깔 모양 무늬등을 다채롭게 제조 할 수 있으며, 여러 가지 방식으로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벽돌 자체로의 독립적인 건물이 구조적으로 내진에 취약하다고 볼 수 있지만 현대의 기술력으로 보면 얼마던지 극복할 수 있는 문제 이기에, 재료의 내구 내화 성능에, 다양한 쌓기 기법의 장점은 지속적으로 쓰여 질 것이다. 또한 세계 어느 건물을 보더라도 벽돌의 고색창연함은 기타 재료가 따라 올 수가 없을 정도다. 벽돌의 켜켜에 세월도 함께 묻어 있는 멋이란 가히 감탄하고도 남는다. 이곳 풍수원 성당도 마찬가지다. 풍수원 성당은 서울역 뒷편에 있는 중림동 약현성당과 내 외부 구조가 아주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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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현성당]

쌍둥이 건물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머릿속으로만 남겨 비교하면 틀린 구석을 찾아 낼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하다. 기초석과 붗임벽, , 전체적인 분위기 등 똑 같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곳은 용인에서 안주할 곳을 찾아 나선 신태보 일행과 병인양요(고종 31866)신미양요(고종 81871), 숨어 들오 온 신자들이 성직자 없이 신앙생활을 한 곳이다. 갖은 박해를 피해 이곳에 정착한 신자들은 화전과 토기점으로 생계를 유지 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조불 수호 통상 조약(朝佛修好通商條約1866)으로 성직자들에 대한 박해가 옅어지자 1888년 불란서 성직자 르메르(Le Merre) 신부가 이곳으로 오면서, 춘천, 화천, 양구, 홍천, 원주, 양평등 12개 군을 관할하는 명실상부한 강원도 최초의 본당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18962대 주임으로 정규하 신부가 부임하면서 성당으로 사용하던 초가집 20여 간에서 번듯한 성당으로의 변모를 꿈꾼다. 그런데 건물을 지어 보지 못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이 공부하고 머물기도 한 서울에서 매일이다 싶이 보아온 약현성당의 모양 그대로를 가지고 오는 일이었던 것이다(명동성당을 축소해 놓았다는 설도 있다). 그래서 거의 같은 것이다.

정규하 신부는 1863년 생으로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병인박해를 피해 충남 청양으로, 또 충북 음성 감곡으로, 거기서 충북 소태면으로 가서 정착을 하고, 나무와 달걀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성자의 꿈을 키웠다한다. 그런 그는 뜻대로 페낭 신학교에서 유학을 하고, 서울 용산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여 1896년 한국교회 사상 네 번째(세 번째라고 설명된 곳도 있음)로 사제직으로 오른다. 이때, 뮈텔(Mutel,G.C.M)주교에 의해 사제로 서품 받은 곳이 약현성당인 것이다.

다음에 언급 할 기회가 있을 지 모르겠지만 약현성당(1892)에 대해서 몇 자 소회를 풀자면 우리나라 최초의 종교건축이요 서양식 건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성당 건축물의 모범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기능공의 눈으로 보면 그 시절 그 벽돌건물의 느낌은 전혀 오지 않는다. 너무 세련되게 잘 쌓은 건물, 금새 표가 난다. 아마 백 년 후에 우리 후배들이 와서 보면 고색창연 하다라고 평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전혀 아닌 것이다. 모양만 로마네스크 건물일 뿐. 십여 년 전 불이 나서 전체를 다시 짓었으니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 풍수원 성당은 다르다. 그 시절에 이 골짜기에서 어떻게 이런 건물을 벽돌로 지엇을까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게 할 정도로 원형 그대로를 볼 수 있다. 비록 청나라 벽돌공이 쌓았다고 하지만 한 세대를 앞서간 선배들의 정성이 그대로 묻어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아산의 공세리 성당공주의 중앙 성당과 같이 분위기 또한 대단하여, 사람들의 발길을 단숨에 붙잡아 둔다.

자료에 의하면, 풍수원 성당은, 정규하 신부가 부임한 지 10년이 지난 1905년 착공식을 갖고, 중국인 기술자 진배드로등을 고용해, 자신의 사재와 교우들의 헌금 8,000원과 노력 봉사로 1907년 완공을 했다고 한다. 지금의 제작 기술과 공법으로만 치면 한달이면 짓고도 남을 규모지만, 이년 여를 걸렸다는 것은, 그때의 상황을 짐작하게 만든다. 다른 역사적 기술들이야, 역사가들이 더 잘 알 것이어서, 여기서 우리는 풍수원 성당에 사용된 벽돌 재료와 시공을 함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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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은 부축벽과 창틀 주변은 회색 벽돌을, 하부의 빗물이 튀는 곳은 전벽돌을, 기본 벽은 적벽돌을 사용했다. 벽돌의 기본 규격은 230*110*60으로하고 있으며 이형벽돌(처마도리부분.창틀주변등)은 기본벽돌을 갈아 시공을 한 듯 보인다.

쌓기 공법으로 보면 1.5B 영식 쌓기다. 부축 기둥 형성으로 인해 모퉁이 부분이 나타나지 않아, 반절 또는 반반절, 이오토막이 보이지 않으나 벽 두께로 보아 1.5B 영식 쌓기 법이 맞다. 영식 쌓기의 기본은 벽돌벽의 표면에 길이켜와 마구리켜가 번갈아 나타나게 쌓는 것이며, 벽 모서리 끝에서 반절 또는 반반절이나 이오토막을 써서 상하 벽돌이 서로 엇 물려지게 하여 세로줄눈이 막힌 줄눈이 되께 쌓는 공법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1.0B이상의 쌓기 공법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공법이라고 보면 된다.

같은 시기의 서울의 벽돌 건물들은 창대석이나 창문 모서리 모양을 건물 하부 기초석처럼 화강석으로 사용을 하였으나, 산골 오지였던 이 성당은 기초석을 제외 하고 온통 벽돌로 가공하여 모양을 내어 사용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벽돌 한 장 구어 내기도 빠듯할 살림에 돌을 쪼아 모양을 내기가 힘들었으리라. 그 덕에 참 좋은 벽돌 건물 한 채가 고스란히 남아 우리들을 기쁘게 해주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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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원 성당의 보존과 보수의 상태로 보면 매우 열악하고 조잡하여 착잡하다. 앞서 기술한 데로 이곳 풍수원 사람들은 토기를 제작해 팔아 생계를 유지 한 것으로 보아 흙을 굽는 데는 그래도 경험이 있었던 듯하다. 해서 성당 건립 시 근처에서 직접 벽돌을 생산해 사용했다고 한다. 그렇다 치면 시대적 상황으로만 봐도 온전한 강도의 제품이 나올리 없을 것이었고, 이를 유추하여 보수와 유지 관리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아마도 그렇질 못해 대충 이정도면 되겠지 하고 넘어 갔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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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제거 및 동파된 흔적]

벽돌 제작 시 땔나무도 귀한 터라 그리 높지 않은 온도(900도 정도의 소성)에서 구어 내 함수율이 높은 단점으로 인해, 지역적으로 추운 지역에서 동파된 흔적들이 여기저기 보이고 있다. 해서 언젠가 외벽 방수 개념으로 페인트를 칠했던 모양이다. 이 페인트칠의 흔적은 여기서만 볼 수 있는 문제만은 아니다. 근대 점토벽돌 건물의 80%정도가 보수 개념으로 페인트를 듬뿍 칠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또 복원을 해야 한다고 다시 다이아몬드 그라인더로 벗겨 냈으니 벽돌의 표면이 성할 리 만무하고, 다친 표면으로 습기가 침투하여 겨울에 얼어 터지는 현상이 반복되어 지고 있는 것이다.

또 남쪽과 북쪽의 부출입구 부분을 어느 시기에 증축한 것으로 보이는데, 벽돌을 쌓아 놓은 상태가, 참으로 가관이다. 현장 표현대로 하면 이를 발로 쌓아도 이보다 더 낳겠다 라 하는데 딱 그짝이었다. 맘 같아서는 확 부셔버리고 다시 쌓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려니와 이 또한 시대의 표상이라 생각하고 맘을 다잡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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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축된 부축벽]

이곳 풍수원 성당은 1982년 강원도 지방 유형 문화재 제 69호로 등록되어 관리 되고 있는 벽돌 건물이다. 그렇다면 자격이 있는 업체에서 보수와 증축을 하였을 것인데, 어떻게 본 건물의 시공 품질에 이만큼도 견주지 못할 보수를 했다는 것에, 같은 현장 기능공으로서 부끄러움을 안고 돌아 나왔다.

()한국건축시공기능장협회 조적분과 이명수 김용학.

출처:한국건축시공기능장협회

 

 

※이태희 원장님 풍수원성당 방문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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